필자: 하시모토 사나이
안세이 시대 2년(1855)
하시모토 사나이(1834~1859)는 막부 말의 후쿠이 번(藩) 정부의 무사 겸 의사로, 호는 케이가쿠로 불리었다. 그는 오가타 코안 밑에서 수련하였으며,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방의 번(藩) 정부의 의사가 되었다. 후쿠이 번주 마츠다이라 하루타케의 촉망을 얻어, 번(藩) 정부의 개혁에 주력하였다. 개국무역론을 제창하였으며, 하토츠바시 요시노부(별칭: 토쿠가와 케이키로)의 장군추대운동을 추진하였으나, 이이 나오스케의 수상직 취임으로 실패하며, 안세이 시대6년(1859)의 ‘안세이의 숙청’으로 참형을 당한다. 근대국가로의 전망에 기반한 가장 개화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날인에 적힌 ‘을묘신년시필’에 근거하여, 안세이 시대 2년(1855), 그의 나이 22세의 신년 시필임을 알 수 있다. ‘성득지’란, 이해가 빠른 것을 의미하며,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한유의 ‘분지’라는 시에서 인용한 단어이다. 필자 사나이가 한시에 조예가 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